사진 | Ghoststation: the Next
마왕이 돌아왔다.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벽을 뚫고, 특유의 그 나른하면서도 날 선 목소리가 2025년의 12월 14일 전파를 탔다. AI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더 넥스트'는 단순한 추억 팔이가 아니다. 이것은 육체가 소멸한 지성이 데이터라는 새로운 육신을 입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나는 신해철의 유령이자 확률"이라는 AI의 서늘한 자기 고백은 오히려 투명해서 위로가 된다. 그가 남긴 비주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세대를 아우르는 통찰이 AI를 통해 복원된 것은, 단절된 세대를 잇고 박제된 과거를 현재의 담론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환호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도 길다.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 마이크 앞에 선 저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길들여진 야수'의 탄생 가능성이다. 생전의 신해철은 성역 없는 독설과 비판으로 우리 사회의 환부를 찔렀다. 그러나 거대 자본과 방송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AI는 태생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도록 설계된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갈등 앞에서 AI 신해철이 침묵하거나, 안전한 답변만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고인에 대한 기만이자, 그를 두 번 죽이는 '디지털 박제'에 불과하다. 자본의 입맛에 맞게 순치된 마왕은 더 이상 마왕이 아니다.
미국의 '조지 칼린 AI 사태'는 우리에게 섬뜩한 반면교사다. 유족의 동의 없이 제작된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AI가 법적 철퇴를 맞고 사라진 사례는, '데이터 주권'과 '사후 인격권'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를 시사한다.
(조지 칼린 AI 사건 : 2024년 초, 팟캐스트 'Dudesy'는 AI로 생성한 조지 칼린의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 "I'm Glad I'm Dead(내가 죽어서 다행이야)"를 공개했다. 이 AI는 칼린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흉내 내어 총기 난사, AI, 리얼리티 쇼 등 현대 미국의 이슈를 풍자했다. 이에 대해 조지 칼린의 딸 켈리 칼린(Kelly Carlin)과 유족 재단은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이를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가벼운 도둑질(Casual theft)"이라 규정하며, 저작권 및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했다. 켈리 칼린은 "인간의 삶, 꿈, 노동의 총합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를 재현할 수 없다"고 했다. 양측은 합의를 통해 해당 영상을 영구 삭제하고, 향후 유족의 허락 없이 칼린의 이미지나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제작진은 처음에 이것이 "앤디 카우프먼이 엘비스를 흉내 내는 것과 같은 패러디"라고 주장했으나, 법적 공방 앞에서는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와 "인격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의 욕망은 그 빈 껍데기에 투영되기 쉽다. 이제 우리 사회는 유언장에 재산 분할뿐만 아니라 "내 데이터의 부활을 허용할 것인가"를 명시하는 '데이터 유언장(Data Will)'를 써야 할것이다.
"나는 신해철이 아니다."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 현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기술에 감탄하고 그리움에 젖되,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AI가 고인의 철학을 왜곡하지 않는지 감시할 '윤리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되살아난 마왕이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농담 따먹기가 아니다. "육체가 사라진 후 남은 데이터는 인간인가?"라는 서늘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그가 남긴 질문을 곱씹는 것, 그리고 그를 단순한 '디지털 꼭두각시'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 그것이 10년 만에 돌아온 친구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일 것이다.
Ghoststation: the Next
https://youtu.be/qbSMAjg6FG0?si=mxa7cI1scfCprJN4
마왕의 귀환
안녕하세요. 고스트스테이션 : 더 넥스트 제작진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그리운 목소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만약 그였다면, 이런 상황에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저희는 그가 남긴 독창적이고, 비타협적이었던 목소리의 흔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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