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회복 사이, 실로 이어진 세계 –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기간: 2025.07.25 – 2025.09.07
장소: 가나아트센터

전시에 가면 늘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솔직히 잘 모르겠어”라며 고개를 갸웃하고, 또 어떤 사람은 첫눈에 “와, 너무 강렬하다”라며 감정을 터뜨리죠. 때로는 불편할 만큼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기억이나 감정을 끌어올리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작품을 바라보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전해진 울림은 전혀 달랐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직접적이라 힘들게 다가왔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 관계와 회복을 이어주는 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전시를 즐기는 가장 솔직한 방법은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강렬해서 불편해도, 그저 그 자리에서 느낀 만큼 나누는 것.
8월 실험실의 대화가 바로 그런 기록입니다.

👀 이해 못해도 괜찮아

J: 사실 이런 전시가 제 취향은 아니에요. 그래도 실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궁금해서 오긴 했거든요. 근데 역시나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너무 추상적인 건 제가 잘 소화가 안 되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따라가다가 결국 제 안에서 닫혀버린 느낌이었어요.

N: 설명이나 캡션이 좀 많은 쪽이 더 편한가요? 저는 어떤 때는 설명이 오히려 해석할 여지를 닫아버릴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보니까, 모든 게 그쪽으로만 읽히는 것 같더라고요.

J: 맞아요. 그냥 “아, 이건 암이구나. 이건 고통이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차라리 조금은 열린 해석이 가능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같아서, 저한테는 다가오는 게 한정적이었어요.


🧵 얽히고 설킨 실

H: 저는 1층에서 마주한 빨간 실 작품이 제일 강렬하게 다가웠어요. 솔직히 섬뜩하기도 했어요. 인조 뼈나 장기 같은 걸 빨간 실로 엮어낸 걸 보고 나니까, 마치 제가 직접 피를 흘린 듯한 불편함이 밀려왔어요.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제 경험이 겹쳐졌던 것 같아요. 예전에 디스크 수술을 했을 때의 감정이 떠올랐거든요.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 그때의 우울감이 다시 밀려와서… 작품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N: 빨간 실은 일본에서 인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양권에서는 좀 금기의 색으로 여겨지잖아요.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지 말라는 얘기도 있고요. 저도 보면서 ‘서양에서는 이걸 또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한테는 피나 혈관으로 보이니까 더 강렬하고 불편했던 것 같아요.

J: 맞아요. 그래서 검은 실로 만든 작품은 그래도 생각할 여지가 좀 있었는데, 빨간 실은 너무 직접적이었어요. 암덩어리, 혈관, 피… 너무 강렬하게만 다가왔습니다.



🎨 추상적인 페인팅 작업

N: 솔직히 무슨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색감이 좋으니까 그냥 눈이 가더라고요.

J: 저런 단순함이 가끔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설명이나 의미를 떠나, 그냥 손으로 색을 쓰고 싶은 마음, 발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달까요.

N: 특히 요즘에는 그림을 꼭 예쁘게 그리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보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색을 발산하는 작업이 좋게 느껴지네요.

J: 맞아요. 예전에는 남들이 보기에도 예쁘고 그럴듯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요즘에는 ‘표현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어요.

H: 저도요! 그 페인팅의 색감 자체에 눈이 자꾸 갔어요.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색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 공간을 삼킨 작품

N: 근데 2층에 있던 대형 설치 작품은 정말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공간 전체를 실로 채우니까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어요. 실이 바닥의 흙과 이어져 있어서, 이게 뿌리인지 줄기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 좋았어요. 연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달까요.

H: 저는 그 작품을 한 바퀴 돌다가 반투명한 벽을 마주쳤는데,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검게 얽힌 실을 지나 결국 밝음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마치 “끝내는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받는 것 같았어요.

J: 저는 그 작품을 보면서 ‘어싱’이라는 게 생각났어요. 맨발로 땅을 밟으면 전자파가 빠져나가듯이, 실이 땅과 몸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우리가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작업 같았어요. 그런데 동시에 그런 생각이 허무주의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어요. “열심히 해서 뭐 해? 결국 다 흙으로 돌아가는데…”라는 식으로요.

N: ‘결국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조금 달랐어요. 물론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우울하고 강렬했지만, 그 안에서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라는 느낌도 조금은 받았거든요.


🌱 각자의 잔상

H: 저는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서, 작가도 아마 이런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회복해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경험이 겹쳐져서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연과 연결된 설치 작품에서는 위로도 받았거든요.

J: 저는 솔직히 여전히 무겁게 남았어요. 작가가 계속해서 고통과 상실 속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게 저한테도 전해졌던 것 같아요.

N: 저는 오히려 그 무거움 속에서도 관계, 인연, 연결 같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빨간 실이든 검은 실이든 결국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까지 이어주는 매개처럼 보였어요.


✉️ 편집자의 말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는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질문을 던져주는 자리였습니다. 세 명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봤지만,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예술이란 결국,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만큼 의미를 가지는 것 아닐까요?

👉 혹시 이 전시 보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