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왜 좋은 걸까요?"
하나의 공간, 두 명의 사진작가. 저희 팀은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열리고 있는 《알렉스 키토 사진전》과 《조나단 베르텡 사진전》을 모두 관람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떠오른 풍경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은 작품을 보고도 누군가는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색감의 비밀을 파헤쳤습니다. 결국 예술 감상은 정답을 찾는 퀴즈가 아니라, 작품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내 안의 어떤 모습이 비치는지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아닐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그 첫 번째 여정으로, 광활한 자연 앞에서 각자의 기억을 마주하게 했던 《알렉스 키토 사진전》에 대한 솔직한 감상부터 들려드릴게요.
🧪 오늘의 실험실 멤버
· 실험 설계자: 제이
· 공동 실험자: 판교댁, 대장, 구파발, 꾸이, 밍구
Chapter 0. 누구의 작품을 먼저 만날까?
전시는 두 작가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팀원들은 각자의 끌림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 제이 : 저는 보고 싶었던 알렉스 키토 사진전을 먼저 봤어요. 티켓팅할 때 뭘 먼저 보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골라야 했죠.
· 구파발 : 저는 직원분께 어떤 걸 추천하는지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조나단 베르텡을 먼저 보는 걸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아마 키토의 작품이 색감이 강렬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었어요.
· 판교댁 : 저는 자연스럽게 동선이 왼쪽을 먼저 가야 할 것 같아서 조나단 베르텡을 먼저 봤어요.
· 대장 : 저는 눈에 띄는 것부터 먼저 봐요. 작가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듯이, 관객들도 보고 싶은 작품을 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 판교댁 : 그런데 전시를 보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재입장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아서 조금 헷갈렸어요. 다 보고 밖으로 나온 건데, 다음 전시를 보려면 다시 들어가야 하잖아요. 제가 동선을 잘못 이해했나 싶어 직원분께 다시 여쭤봤어요.
Chapter 1. 알렉스 키토: 내 마음의 풍경을 마주하다
· 제이 : 저는 키토의 작품이 좋았어요. 전시 공간의 인테리어부터 사진과 너무 잘 어울렸고, 크림색 벽면과 우드 톤의 포인트가 제가 좋아하는 따뜻한 느낌이었죠.
특히 콜로라도의 자연을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제가 영국 스코틀랜드에 살 때 혼자 기차를 타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탐험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진 속 울타리를 보니, 지도가 알려주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 소 울타리를 직접 열고 풀밭을 무서워하며 건넜던 순간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제 머릿속에만 남아있던 그 느낌과 감정이 키토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 판교댁 : 콜로라도랑 스코틀랜드는 풍경이 많이 다르지 않나요? 제가 생각한 콜로라도는 좀 더 광활한 느낌이었거든요.
· 제이 : 그런데 사진들에서는 제가 봤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 많았어요.
· 대장 : 저는 그 사진들을 보며 제 경험이 떠오르기보다는 목가적이고 평범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주 강렬한 인상은 없었죠. 대신 저는'생명'을 느꼈어요.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순간에도 생명은 존재하고 순환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이요.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고요함(Silence)'이 깔려 있는데, 유일하게 물이 흐르는 '롤링 리버(Roaring river)'라는 작품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서 특히 좋았습니다.
· 꾸이 : 키토의 사진은 색감이 너무 강해서 사진 본연의 느낌보다는 그래픽적인 느낌이 강하게 남았어요.
· 제이 : 저도 키토의 사진을 보면서 실제로 보는 자연은 저런 색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보다 더 과하게 표현된 느낌이 있었죠. 그래서 오히려 제 기억 속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사실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내 감정 속에 남아있는 모습이 표현된 것 같아 더 공감할 수 있었어요.
· 꾸이 : 제가 사진 수업을 들었을 때, 사람은 풍경을 볼 때 전깃줄 같은 불필요한 것들을 뇌에서 필터링해서 아름답게 본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그 모든 게 담겨서 번잡해 보일 수 있고요. 제이 님은 그 풍경을 더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번 사진전이 더 마음에 와닿았을 수도 있겠네요.
· 밍구 : 저는 동화적인 색감이 참 좋았어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보이는 노란색과 분홍빛 컬러가 도드라지는 느낌이요. 그 영화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을 좋아하는데, 그 느낌이 사진에 많이 담겨 있어서 영감을 많이 받았구나 생각했어요.
· 밍구 : 눈이 쌓여 있는 풍경에서 대비되는 따뜻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는 작품이 특히 좋았어요. 추운 날씨가 주는 포근한 느낌이 잘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 판교댁 : 저도 그 사진을 봤어요. 추운 겨울과 따뜻한 실내를 대비시킨 건 전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눈 쌓인 바깥 풍경이 춥게 느껴지지 않고 따뜻하게 보이더라고요. 왜 나한테는 저게 따뜻하게 보일까, 생각하며 지나갔어요.
· 제이 : 키토가 겨울을 좋아한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저는 그 작품들에서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키토의 모든 작품이 좋았던 게 아니라, 제 추억을 떠올리게 한 작품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밍구 : 저는 작가분이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강릉에 살면서 눈이 너무 많이 오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차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눈 오는 풍경 자체를 여전히 아름답게 바라보는구나 싶었어요.
✉️ 실험실의 코멘트
알렉스 키토의 사진 앞에서 실험실 팀원들은 각자의 ‘새로운 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같은 풍경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잊었던 탐험의 기록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기억 속 감정의 색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결국 예술 감상은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맞히는 퀴즈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품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내 안의 어떤 모습이 비치는지, 어떤 기억과 감정이 말을 걸어오는지 귀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는 여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알렉스 키토의 풍경이 ‘나의 기억’을 향했다면, 흐릿한 인상주의 사진작가 조나단 베르텡의 시선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다음 편에서는 《조나단 베르텡 사진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품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힘, ‘큐레이팅’과 예술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